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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질서, 디스코드 서버 개설해

내용과 형식 (또는 그 반대)

루이스 설리번

무언가를 만들 때 우리는 종종 오랜 수수께끼와 마주한다. 내용을 먼저 정할까, 형식을 먼저 정할까? 이는 웹사이트를 만들 때뿐 아니라 집을 짓거나 연애편지를 쓸 때도 반복되는 딜레마다.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은 이렇게 말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하지만 마감에 쫓기는 누군가에게 이 말은 일단 형식부터 짜고 채워 넣자는 말로 들릴 뿐이다. 내용이 그릇(형식)을 결정하는지, 아니면 그릇의 모양이 담기는 물(내용)을 바꾸는지에 대한 논쟁은 다소 철학적이지만,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지극히 물리적인 고통으로 다가온다.

예컨대 ‘사과’를 생각해보자. “정말 미안해.”라는 내용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내용을 카카오톡 메시지에 담는지, 두툼한 종이 위의 손편지에 담는지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앞엣것은 가벼운 통보로 오해받기 쉽고, 뒤엣것은 진중한 참회로 읽힌다. 형식이 내용의 진정성을 결정해버리는 순간이다. 즉, 내용과 형식은 연인이라기보다 공범에 가깝다. 내용은 형식을 요구하고, 형식은 내용을 유도(또는 강요)한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는 이 보편적인 줄다리기가 가장 투명하게 드러난다. HTML을 쓰는 순간 우리는 불가피하게 구조를 결정한다. 제목(<h1>)을 쓸지, 문단(<p>)을 쓸지, 목록(<ul>, <ol>, <dl>)을 쓸지 고민하는 것은 정보의 위계를 정하는 다소 정치적 행위다. 여기에 CSS로 스타일을 부여하면 일종의 어조가 생긴다. 자간을 좁히면 왠지 지적이고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되고, 여백을 넓히면 여유롭지만 때로는 할 말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가장 극적인 비극은 ‘로렘 입숨’(Lorem Ipsum)에서 일어난다. 디자이너는 정해지지 않은 내용을 대신해 라틴어 더미 텍스트인 로렘 입숨을 채워 넣고 완벽한 형식을 잡는다. 화면 속 로렘 입숨은 황금비율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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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내용’을 붙여넣는 순간, 견고하던 형식은 무너진다. 제목은 너무 길어 두 줄로 넘어가고, 이미지는 해상도가 낮아 픽셀이 깨진다. 내용은 형식을 배신하고, 형식은 내용을 감당하지 못한다.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고,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라는 칸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둘은 꼭 서로를 망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먹음직스러운 체리 사진 갤러리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사진을 동일한 크기로 정렬한다면, 체리라는 내용은 질서 정연한 식물 도감처럼 읽힌다. 반면, 크기가 제각각인 사진을 서로 엇갈리게 배치한다면, 같은 체리라도 핀터레스트 풍의 감성적인 오브제나 쏟아지는 이미지 폭포처럼 느껴진다. 내용은 그대로지만, 형식이 의미의 층위를 바꿔버린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말은 잘못된 CSS(형식) 탓에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메시지(내용)의 억울함을 예견했을지 모른다.

결국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무엇’을 보여줄지 고민하는 동시에 ‘어떻게’ 오해하게 만들지(또는 이해시킬지) 설계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순서가 아니다. 내용을 먼저 정해도, 형식을 먼저 정해도 좋다. 핵심은 둘 사이의 긴장을 예민하게 조율하는 감각 아닐까? 예컨대 빽빽한 내용을 위해 여백이라는 형식을 내어주거나, 빈약한 내용을 감추기 위해 화려한 포장지라는 형식을 빌려오는 임기응변.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이것은 어떤 내용인가? 그리고 즉시 되묻는다. 그렇다면 이 내용은 어떤 형식이어야 하는가? 또는 그 반대.


물론 내용과 형식의 아름다운 줄다리기는 이따금 양쪽 모두 진흙탕에 나뒹구는 비참한 결과로 끝나기도 한다. 훌륭한 내용이 끔찍한 형식에 갇혀 질식하거나 근사한 형식이 담아낼 내용이 없어 유령처럼 배회하는 것. 사실 이 즐거움이야말로 우리가 기꺼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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