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웹
2012년 잭 쳉(Jack Cheng)이 쓴 에세이 「느린 웹(The Slow Web)」은 ‘빠른 웹’과 ‘느린 웹’의 차이를 시의적절함, 리듬, 중용, 지식이라는 키워드로 명쾌하게 구분한다.
2016년 업데이트: 이 에세이(사실상 블로그 포스트)는 몇 년 전, 내가 가장 자주 들르는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이 나를 어떤 기분으로 만드는지 설명하기 위해 쓴 것이다. ‘느린 웹’의 예시로 든 서비스 가운데 다수는 이제 사라졌고, ‘빠른 웹’은 오늘날 훨씬 더 빠르고, 광적이며, 중독적으로 변했다. 내 생각도 글을 쓴 뒤로 많이 바뀌었다. 짧게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이 복잡하고 시스템적인 문제가 사용자 경험 관행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솔직히 애초에 그렇게 믿었던 것 같지도 않다.) 긴 이야기는 직접 만나서 나누는 게 좋겠다.
뉴욕에서 맛있는 라면 한 그릇을 즐기기에 특히 좋은 곳 가운데 하나는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밍카(Minca)다. 밍카는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지나친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그런 곳이다. 밍카의 라면 한 그릇은 뉴욕의 다른 라면집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은 아니지만, 맛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다. 밍카의 라면에는 집밥 같은 정성이 있고, 식당 자체에도 가정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친구와 만나 앉아서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고, 또 먹고 이야기하고 앉아서 마시기에 좋은 곳이다.
지난번 밍카에 갔을 때, 나는 월터 첸(Walter Chen)과 특히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월터는 매일 성취한 일들을 기록하도록 돕는 조용하고 작은 서비스인 ‘아이던디스’(iDoneThis)의 CEO다. 아이던디스는 사용자가 지정한 시간에 매일 이메일을 보내고, 사용자는 그날 한 일을 답장으로 적어 보내기만 하면 된다. 팀원들이 각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싶은 팀이나, 그저 기록을 남기고 싶은 개인에게 유용하다.
내가 처음 월터에게 연락한 건 매일 오는 이메일 하단에 적힌 이 선문답 같은 문구 때문이다.
아이던디스는 ‘느린 웹 운동’(slow web movement)의 일부입니다. 이메일을 보낸 뒤 캘린더는 즉시 업데이트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 푹 쉬고 나면, 아침에 캘린더가 업데이트됩니다.
아이던디스는 느린 웹 운동의 일부다. 느린 웹 운동. 나는 그전까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즉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구글에서 ‘느린 웹 운동’을 검색했다는 뜻이다.) 검색 결과는 딱 하나, 2년 전에 쓰여진 블로그 포스트뿐이었다. (오늘 다시 검색해보면 월터가 자기 회사 블로그에 쓴 글을 찾을 수 있을 텐데, 거기에는 저녁 식사 때 그가 내게 해준 이야기가 많이 반영돼 있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나는 월터에게 이렇게 말했다. ‘느린 웹 운동’이라는 말을 보자마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고. 왜냐하면 그건 훌륭한 이름이고, 훌륭한 이름은 매듭과 같기 때문이다. 다른 단어와 똑같은 실로 짜여 있지만, 특정한 배열을 통해 무언가를 붙잡고, 새로운 실이 도착하고 또 다른 실이 출발하는 교차점이 된다. 내게 ‘느린 웹’은 흩어진 수많은 생각을 깔끔하게 묶어주는 단어였다.
느린 웹과 슬로 푸드
느린 웹 운동은 슬로 푸드 운동과 많이 닮았다. 둘 다 수많은 다른 의미를 포괄하는 용어라는 점에서 그렇다. 슬로 푸드는 로마의 스페인 광장에 생긴 맥도날드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기에, 그 기원부터 ‘무엇이 아닌가’로 정의됐다. 그것은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우린 패스트푸드가 뭔지 다들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에게 패스트푸드의 특징을 묘사해보라고 하면, 제각각 다른 대답을 내놓을 테다. 저급 재료로 만든다, 설탕과 소금과 지방이 많다, 다국적 기업이 판다, 너무 큰 몫을 너무 빨리 먹어치운다, 맥도날드-타코벨-서브웨이다. (비록 서브웨이가 신선한 재료 마케팅에 돈을 쏟아붓더라도 그건 여전히 ‘건강한’ 패스트푸드일 뿐이다.)
패스트푸드에는 ‘보기만 하면 딱 안다’는 특성이 있는데, 그건 패스트푸드라는 단어가 개별적인 특징의 합보다 더 큰 뭔가를 묘사하는 까닭이다. 패스트푸드, 그리고 결과적으로 슬로 푸드는 음식을 통해 우리가 얻는 ‘느낌’을 묘사한다.
느린 웹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느린 웹은 제품이든 콘텐츠든 웹 기반의 무언가를 소비할 때 우리가 얻는 느낌을 묘사한다. 부분의 합이긴 하지만, 먼저 그게 무엇이 아닌지, 즉 ‘빠른 웹’부터 이야기해보자.
빠른 웹
빠른 웹이란 무엇인가? 통제 불능의 웹이다. “오, 젠장, 볼 게 너무 많아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같은 웹이다. 하루에 스무 번 이상 확인하는 웹이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는 웹이다. 우리의 지적 미각 가운데 가장 저급한 부분에 호소하도록 설계된, 온라인 콘텐츠의 소금, 설탕, 지방 같은 웹이다. 빠르고 크게 확장하는 웹이다. 수십억 명을 위한 목적지를 만드는 웹이다. “226개의 새로운 업데이트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웹이다. 따라오지 않으면 낙오된다. 클릭해라. ‘좋아요’ 눌러라. 트윗해라. 공유해라. 빠른 웹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기를, 그것도 당장 하기를 요구한다. 빠른 웹은 반짝이는 것으로 가득한 잔인한 이상한 나라다.
시의적절함 대 실시간
빠른 웹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실시간’이라는 개념이다. 친구가 노래를 들으면, 우리는 그걸 알게 된다. 둘 사이의 간격이 좁을수록 실시간에 가까워진다.
실시간 상호작용은 일어나는 즉시 발생한다. 반면, ‘시의적절한’ 상호작용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발생한다. 지진 속보 같은 일부 실시간 상호작용은 시의적절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시의적절한 상호작용이 실시간인 것은 아니다. 나는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겠다. 빠른 웹이 ‘실시간성’을 중심으로 구축됐다면, 느린 웹은 ‘시의적절함’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느린 웹 제품의 훌륭한 예가 인스타페이퍼(Instapaper)다. 인스타페이퍼는 긴 기사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읽는(실시간) 과정을 분리해 나중에 읽을 시간이 충분할 때(시의적절) 읽도록 미뤄준다. 비유를 좀 늘리자면, 음식을 포장해 배고플 때를 위해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과 같다. 다만 이 경우에는 음식이 쉬거나 맛이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던디스는 데이터베이스에 항목을 만들고 다시 읽는 아주 표준적인 상호작용(보통 실행하는 데 몇 초도 안 걸리는)을 분해해버린다.
일반적인 애플리케이션은 이렇게 작동한다. 텍스트 입력창이 있고, 한 일을 입력하고, 제출을 누른다. 데이터베이스가 업데이트되고 거의 즉시 제출한 텍스트가 화면에 출력된다. 아이던디스는 이 마지막 두 단계, 즉 업데이트와 확인을 몇 밀리초에서 반나절로 늘려버린다. 데이터베이스는 밤사이 언젠가 업데이트되고, 확인은 다음 날 아침 편지함에서 이뤄진다.
이를 부르는 다른 이름은 ‘턴 방식’(turn-based)이다. 턴 방식 게임처럼 말이다. 스크래블이나 픽셔너리 같은 전통적인 게임은 상대적으로 실시간성을 요구한다. 둘 이상이 같은 장소에 있어야 하고, 게임을 할 의지와 자유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 실시간 경험을 해체하면 ‘워드 위드 프렌즈’(Words With Friends)나 ‘드로우 썸씽’(Draw Something) 같은 게임이 된다. 그렇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활동이 이제 각 참가자에게 더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다. 인스타페이퍼는 턴 방식 독서다. 아이던디스는 턴 방식 데이터 추적이다.
하지만 시의적절함만으로는 느린 웹이 될 수 없다. 이메일도 결국 턴 방식 커뮤니케이션이지만, 이메일 편지함은 아마도 빠른 웹이 주는 고통의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턴 방식 게임들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하면 금세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경우 빠져 있는 것은 고유한 리듬감이다.
리듬 대 무작위
매주 수요일 밤 9시부터 10시까지 방영하는 새로운 드라마가 있다고 치자. 관심이 생겨서 시간을 비워두기로 결정하면, 이제 ‘시청’이라는 행위가 주도권을 잡는다. 쇼 자체가 중요해진다. 그런데 이번엔 어떤 드라마가 있는데, 때로는 1시간, 때로는 30분, 때로는 2시간이고, 화요일이나 수요일이나 목요일 밤 6시에서 11시 사이에 방영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해보자. 갑자기 중요한 건 쇼가 아니다. 쇼가 방영될지 말지가 중요해진다. ‘다음은 뭐지?’가 ‘다음은 언제지?’로 바뀐다.
빠른 웹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 편지함과 대시보드에 뜨는 업데이트의 무작위성과 빈도는 우리 뇌의 보상 기제를 자극한다. 뜻밖의 멋진 것을 발견했을 때 기분이 좋아질 수는 있지만, 의존성은 금단 현상을 낳고,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든다. 불확실한 리듬의 위험성은 ‘보상 주스’가 너무 과하다는 데 있다.
신뢰할 수 있는 리듬은 예측 가능한 결과로 이어진다. 이때 리듬은 곧 ‘중용’의 표현이다. 아이던디스 같은 앱에는 이런 중용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이메일 알림을 받고, 각 상호작용이 요구하는 수준도 비슷하다. 편지함 전체와는 다르다. 편지함에는 훑어보고 버릴 뉴스레터부터 긴 답장이 필요한 개인적 이메일,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게 섞인 까닭에 요구하는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중용의 부재는 어떤 때는 편지함을 보는 데 몇 분이면 되지만, 어떤 때는 몇 시간이 걸리게 만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메일 생산성 시스템은 일종의 중용, 즉 ‘표준화’에 관심을 둔다. 상호작용의 크기와 요구량을 표준화하고(메시지를 보관하거나 삭제하고 넘어가기, 긴 후속 조치가 필요한 이메일은 할 일 목록으로 옮기기, 답장은 세 문장으로 제한하기), 빈도를 표준화(하루에 n번만 확인하기, 정해진 시간에만 하기)하도록 장려한다.
리듬과 중용을 실천한 훌륭한 예는 완더(Wander)의 출시 과정이었다. 베타 출시를 앞둔 몇 주 동안, 키넌과 팀원들은 다른 사이트라면 첫 실행 경험 한 번으로 끝냈을 것을 4주에 걸쳐 늘려놓았는데, 대림절 달력(advent calendar)과 비슷했다. 매주 비슷하게 까다로운 상호작용이 주어졌다. 장소를 대고, 사진을 고르고, 이유를 적어라.
이를 잘하는 또 다른 서비스는 버스터와 해빗 랩스(Habit Labs) 팀의 버지(Budge)다. 버지는 치실질, 명상, 몸무게 기록 등 삶을 작지만 유익하게 개선하는 매일의 할 일을 상기시켜주는 알림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가입하고 나면 오직 알림을 통해서만 버지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나는 과거에 사이트나 앱을 방문하지 않고도 몇 주 동안 내 폰으로 오는 문자에 답장하는 것만으로 서비스를 즐겁게 이용한 적이 있다.
느린 웹과 빠른 웹의 엄청나게 중요한 차이점이다. 빠른 웹은 목적지 기반이다. 느린 웹은 상호작용 기반이다. 빠른 웹은 홈페이지, 편지함, 대시보드를 중심으로 구축된다. 느린 웹은 시의적절한 알림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빠른 웹 기업들은 페이지 뷰를 늘리려 애를 쓰는데, 페이지 뷰가 곧 광고 노출인 까닭이다. 느린 웹 기업들은 효용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경향이 있다. 버지의 특기할 만한 점은 이것이다. 더 잘 작동할수록, 덜 사용하게 된다는 것. 치실질이 습관이 되고 나면 내 뇌가 주도권을 잡고, 더 이상 알림이 필요 없어진다. 월터는 앞서 언급한 블로그 포스트에서 이 신조를 잘 설명했다.
성장이 아니다. 행동 변화다. 행동 변화는 타인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고, 규모는 자아에 관한 것이다. 행동 변화를 확실히 한 다음에 규모를 키우는 게 규모를 키운 다음에 행동 변화를 시도하는 것(따라서 지속 가능성을 지닐 기회)보다 쉽다.
느린 웹 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성장보다 효용성을 앞에 둔다는 뜻이다. 그리고 효용성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버지로 치실질은 끝났을지 몰라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있고, 한 번 겪어봤기에 그 회사를 더 신뢰하게 된다.
지식 대 정보
시의적절함. 리듬. 중용. 이것들은 내가 생각하는 느린 웹과 빠른 웹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귀결된다. 빠른 웹은 정보에 관한 것이다. 느린 웹은 지식에 관한 것이다. 정보는 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지식은 우리게 스며든다. 그리고 시의적절함, 리듬, 중용은 모두 기억과 학습에 필수적이다.
다시 한 번, 아이던디스가 적절한 예가 된다. 며칠 사용하다 보면 매일 오는 이메일 하단에서 하루 전, 또는 일주일 전에 내가 한 일을 돌이켜보게 된다. 베니와 존의 제품인 타임홉(Timehop)의 축소판 같은 것인데, 타임홉은 소셜 계정을 연결하면 1년 전 그날 내가 했던 모든 일을 담은 요약문을 보내준다.
타임홉과 아이던디스는 모두 우리가 기억하고 회고하도록 돕고, 이것이 우리에게 관점을 준다.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를 붙들어 매거나, 어쩌면 나무 꼭대기 위로 들어 올려준다. 아이던디스는 내가 접해본 할 일 관리 도구 가운데 유일하게 내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줄 잠재력이 있는 도구다. 빠른 웹은 방금 일어난 일이나 곧 일어날 일에서 가치를 뽑아낸다. 느린 웹은 더 깊은 과거에서 가치를 발굴한다.
느린 웹
실시간이 아닌 시의적절함. 무작위가 아닌 리듬. 과잉이 아닌 중용. 정보가 아닌 지식. 느린 웹의 수많은 특징 가운데 일부다. 체크리스트라기보다 느낌에 가깝다. 우리의 생활 속의 웹 기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더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 말이다.
슬로 푸드처럼 느린 웹은 소비만큼이나 생산에도 관심을 둔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만의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빠른 웹의 영향을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설명했듯 웹에 연결된 제품을 만드는 생산자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 고려할 수 있는 게 적지 않다. 어쩌면 느린 웹은 아직 ‘운동’(movement)이라 부르기에는 이를지 모른다. 어쩌면 아직 끓어오르는 중일지도. 하지만 나는 이 제품 가운데 일부가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느낌에는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으며, 그 느낌은 만든 이의 의도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빠른 웹 기업들은 우리의 연인이 되고 싶어 한다. 항상 우리 곁에 있고 싶어 하고, 우리가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그들과 함께 보내기를 원한다. 이따금 그게 우리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이따금 우리가 진짜 필요로 하는 건, 몇 달에 한 번 이스트 빌리지의 라면 가게에서 만나 라면 한 그릇 할 수 있는 친구다.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며,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에 관해 조금은 배울 수 있는 친구. 밤이 끝나면 일어나 각자의 길을 가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