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질서, 예순한 번째 친구들을 기다려

구난후, 구난후장학재단 설립해

새로운 질서, 디스코드 서버 개설해

오메글

18세 소년의 침실에서 탄생해 전 세계를 무작위로 연결하던 오메글(Omegle)이 14년 만에 문을 닫았다. 창립자 리프 K-브룩스는 이 고별사를 통해 우주에 악이 존재한다고 우주 자체를 폭파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우아한 동시에 날카로운 항변을 남겼다. 하지만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로 스며든 끔찍한 범죄와 이를 방조했다는 비난 섞인 소송(A.M. 사건)의 무게는 결국 그의 인내심을 압도했다. 도덕이라는 이름의 “전능한 참견쟁이”들이 요구하는 불가능한 완벽함과 심장마비의 공포 사이에서 그는 마침내 죽음을 선택했다. 사랑과 범죄가 무질서하게 공존하던 이 기묘한 광장은 이제 박제된 텍스트로서 우리가 타인을 향한 환대를 포기하고 공포를 선택한 시대의 서늘한 유서로 남았다.

낯선 이들에게,

어린 시절 인터넷을 처음 발견한 순간부터 인터넷은 제게 마법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작은 마을에서 자란 제게 인터넷은 세상에 발견할 게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흥미로운 사람들과 아이디어가 가득한지 알려준 계시였죠.

10대였던 제가 대학교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우리 도덕 철학에 관해 토론합시다!”라고 말하거나, 교수님께 다가가 “미시경제학에 관해 흥미로운 점을 알려주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열정적인 위키백과 편집자였고,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래밍을 하다 막힐 때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인터넷은 제가 경험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다양하며 활기찬 세계로 안내했습니다. 또한 제가 그 세계의 적극적인 참여자이자 기여자가 될 수 있게 해줬고요. 이 모든 과정은 제가 배우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줬습니다.

더욱이 어린 시절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 저는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와 상호작용할 때마다 제 신체적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은 그 공포로부터의 도피처였습니다. 저는 인터넷에 좋은 사람들만 있다고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누군가에게 “아니요.”라고 말했을 때, 그들이 화면을 뚫고 나와 제 머리에 무기를 겨누거나 그보다 더한 짓을 할 수 없다는 점은 알고 있었습니다. 저와 타인 사이에 놓인 수마일의 구리선과 광섬유 케이블은 일종의 방패였고, 트라우마와 공포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저를 세계와 연결해주는 힘이었습니다.

저는 18살 때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오메글(Omegle)을 출시했습니다. 오메글은 제가 인터넷에서 사랑한 요소를 바탕으로,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적 즉흥성’을 도입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인터넷이 ‘지구촌’의 구현이라면, 오메글은 마을의 거리를 거닐며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소였습니다.

전제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오메글을 사용하면 무작위로 다른 사람과 채팅을 하게 됩니다. 채팅은 원한다면 길게 할 수도, 짧게 끝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특정인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면 간단히 채팅을 끝내고 다른 사람과의 채팅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개념을 거의 플라톤적인 이상형으로 정제한 거였죠.

제가 생각한 인터넷의 본질적인 이점을 살려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익명으로 남았습니다. 이는 채팅을 그 자체로 완결되게 만들었으며, 악의적인 사람이 채팅이 끝난 뒤 상대방을 추적할 가능성을 없앴습니다.

출시 당시 저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버몬트의 부모님 집 침실에서 18살짜리 소년이 마케팅 예산도 없이 만든 웹사이트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메글은 출시 직후 거의 즉각적으로 인기를 얻었고, 결국 매일 수백만 명의 사용자가 이용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며, 오메글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특히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한 속담처럼 “더 좋은 쥐덫을 만들면 세상은 당신의 집 문 앞까지 길을 낼” 테니까요.

수년 동안 사람들은 오메글을 통해 타 문화를 탐구하고, 편견 없는 제3자에게 인생 상담을 받으며, 외로움과 고립감을 달래왔습니다. 오메글에서 소울메이트를 만나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불행히도 어두운 면도 있었습니다. 사실상 모든 도구는 선을 위해서도 악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으며, 유연한 통신 도구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전화기는 할머니께 생신 축하 인사를 전하는 데 쓰일 수도 있지만, 폭탄 테러 협박을 하는 데 쓰일 수도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오메글을 오용해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오메글에 관해 정직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며, 범죄와 오용을 막기 위한 합리적인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 오메글이 해온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익명성이라는 기본적인 안전 장치 외에도 최첨단 인공지능과 훌륭한 인간 모더레이터 팀이 협력해 막후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오메글은 콘텐츠를 검열하는 데 규모 이상의 성과를 거뒀고, 저는 우리가 성취한 바가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오메글의 노력은 외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메글은 법 집행 기관 및 실종 학대 아동 방지 센터와 협력해 악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감옥으로 가는 데 기여했습니다. 오메글이 선제적으로 수집해 당국에 제보한 증거 덕에 지금 이 순간에도 감옥에서 썩고 있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범죄와의 싸움은 결코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 싸우고 또 싸워야 하는 끝없는 전투입니다. 최선을 다하더라도 큰 구멍을 낼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의미의 ‘승리’는 거둘 수 없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는 범죄학의 기본 교훈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문화가 범죄와의 싸움에서 대리 만족을 위해 특별한 능력을 부여한 허구의 캐릭터인 슈퍼 히어로들조차 범죄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온 세상이 더 까칠해진 것 같습니다. 팬데믹 때문일 수도 있고 정치적 갈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들은 서로를 공격하는 데는 빨라졌고 서로의 인류애를 인식하는 데는 느려졌습니다. 이런 경향 가운데 하나는 일부 악의적인 사용자들의 행동을 근거로 오메글을 포함한 통신 서비스에 가해지는 끊임없는 공격입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범죄가 발생한 장소의 정책과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저는 항상 건설적인 피드백을 환영해왔으며, 실제로 오메글은 수년 동안 그런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많은 개선을 이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공격은 전혀 건설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그런 의도를 드러냅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습니다.

오메글이 이런 공격의 직접적인 표적이지만, 궁극적인 피해자는 여러분입니다. 오메글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삶을 개선해온, 또는 개선할 수 있었던 여러분 모두 말입니다. ‘그들’이 오메글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곧 여러분이 오메글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온라인에서 새로운 사람을 무작위로 만나는 게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생각은 제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 특히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규제를 가할 때 그 규제의 부담이 무고한 피해자나 잠재적 피해자에게 향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 사회의 근본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강간을 예방하기 위해 사회가 여성들에게 정숙한 옷차림을 강요해야 한다는 발상을 떠올려보세요. 이에 대한 반론 가운데 하나는 가해자들이 실제로 옷차림을 기준으로 대상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더 강력한 반론은 가해자들이 무엇을 하든 여성의 권리는 온전하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행동을 근거로 사회가 여성의 신체적 자율권과 자기 표현의 권리를 뺏는다면 (비록 그게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의도에서 비롯했다 할지라도) 사회는 사실상 가해자를 대신해 그들의 일을 해주는 셈입니다.

공포는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포는 삶을 살 가치가 있게 만드는 모든 것에서 우리를 격리하는 정신적 감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개인과 가족은 각자의 독특한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균형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강요된 공포의 세계는 공포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이며, 그곳은 참으로 어두운 곳임이 분명합니다.

저는 오메글 사용자들의 이익과 더 넓은 원칙을 염두에 두고 공격을 견디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단순한 행위가 금지된다면, 그다음은 뭘까요? 그건 제가 앞서 언급한 원칙에 대한 합리적인 타협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한계가 있겠지만, 현실 세계에 비유하자면 범죄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센트럴 파크를 폐쇄하는 일과 같으며, 더 자극적으로는 악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우주를 파괴하는 일과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 정도로 두려워한다면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회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옳은 것이 항상 승리하지는 않습니다. 상황이 달랐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 싸움의 스트레스와 비용은 오메글을 운영하고 오용을 막는 데 드는 기존의 스트레스와 비용에 더해져 너무나 막대해졌습니다. 오메글 운영은 재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30대에 심장마비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오메글을 위한 전투에서는 졌을지 모르지만, 인터넷을 향한 전쟁은 계속됩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온라인 통신 서비스가 오메글과 같은 종류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훨씬 더 큰 자원과 규모를 가진 기업들이지만, 그들에게도 한계점은 있습니다. 조만간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제가 사랑에 빠졌던 인터넷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능동적인 참여와 진정한 인간적 연결의 기회가 훨씬 적고 수동적인 소비에 집중된, 일종의 ‘강화된 TV’만 남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만약 그게 나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신다면, 온라인 권리를 위해 싸우는 단체인 전자 프런티어 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에 기부를 고려해주세요.

오메글을 긍정적인 목적으로 사용해주신 모든 분, 그리고 오메글의 성공에 기여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을 위해 계속 싸울 수 없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오메글의 인간적 대가를 깨닫게 해주신 A.M.에게 감사드립니다.

진심을 담아,
리프 K-브룩스
오메글 창립자

https://ome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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