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질서, 예순한 번째 친구들을 기다려

구난후, 구난후장학재단 설립해

새로운 질서, 디스코드 서버 개설해

백창인과 이야기하는 ‘관계들’

개발자로 취업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알게 됐어요. 정해진 트랙에서 벗어나는 건 제법 큰 용기나 호기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당시 창인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인 문장 또는 장면이 있었나요?

2024년, 혁오와 선셋 롤러코스터의 프로젝트 앨범을 위한 웹사이트 「AAA」를 통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처음 만났습니다. 단순히 혁오에 대한 사랑으로 다다른 이곳에 또 다른 사랑이 있을지 그때는 예감하지 못했죠. 푸터에 마우스 커서를 갖다 대면 숨어 있던 문장이 드러납니다. “Manufactured with love by Min Guhong Mfg.” 사용된 기술이나 방식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사랑’을 넣은 이 뻔뻔한 회사가 궁금해졌어요. 그 뒤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웹사이트를 기념품처럼 만지작거리다 마침내 그 마음을 구홍에게 건넸죠.

“Manufactured with love by Min Guhong Mfg.”

네, 그 마음, 즉 이메일의 마지막 구절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졸업을 앞둔 당시의 저 또한 그저 사랑하는 것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제게는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 이제야 맞는 트랙을 찾은 것이었어요.

학교에서 언론정보학과 미학을 공부했죠. 사람과 매체를 탐구하는 학문, 그리고 아름다움의 본질을 묻는 학문이 지금 개발자로 코드를 쓰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코드 속에서도 미학적인 순간을 발견하나요?

심리학자이자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파울 바츨라빅(Paul Watzlawick)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소통하지 않을 수 없다.”(One cannot not communicate.) 다소 반칙 같은 말이지만, 여하간 코드를 쓰는 일 역시 사람과 컴퓨터의 커뮤니케이션이죠. 그리고 코드는 컴퓨터의 언어인지라 이 일은 마치 타지의 말을 직접 배워가는 공손한 여행객의 느낌을 줍니다. 따라서 작동하지 않는 코드 앞에서 왜 안 되냐고 역정을 내는 건 퍽 우스운 일입니다. 여행객이 건넨 말에 현지인이 당혹스러워 한다면, 그건 아무래도 여행객의 잘못일 테니까요.

창인이 생각하는 ‘미학’에 관해서도 짧게나마 이야기할 거리가 있을까요?

미학은 크게 보아 미론과 예술론으로 구분됩니다. 이런 구분의 가장 큰 이유는 예술이 미를 담지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흔히 코드가 ‘아름답다’고 말할 때 아름다움은 논리정연하고 질서가 잡힌, 즉 조화와 비례를 중시하던 고전적 미에 가깝죠. 이런 미적 순간은 아무래도 거부하기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후에 웹과 코드가 줄 수 있는 것을 고민해봅니다. 가령 화면을 지시하는 코드가 솔 르윗(Sol LeWitt)의 지시문과 맞닿아 있다면, 여기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볼 건 화면의 아름다움도 지시문의 정교함도 아닌 ‘지시’ 그 자체 아닐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으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흐름에 섞이며 창인이 느꼈던 새로운 질서만의 매력이나 이들과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결정적 순간은?

새로운 질서의 가장 큰 매력은 ‘누구나 새로운 질서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 같아요. 구홍이 유난스럽게 환대를 하는 성격도 아니고, 새로운 질서가 환대를 위한 전제 조건들을 명시적으로 선언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질서에는 기묘한 안락함이 난방수처럼 흐르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도 새로운 질서에서 만드는 웹 페이지가 결국 ‘소개’를 위함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신을 소개하는 웹 페이지는 그 어떤 형태로든 정당하고 고유합니다. 접속 가능한 하나의 고유 주소를 받는 웹의 특성상 더더욱 그렇죠. 언젠가 구홍이 “새로운 질서는 그저 용기를 불어넣기 위한 과정일 따름이다”라고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이는 표면적으로 웹 공부에 대한 말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당하고 고유한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아닐까 몰래 생각했습니다.

AG 랩 개발자, 연구원, 퍼즐 제작자. 창인을 설명하는 수식어가 제법 많습니다. 이 가운데 요즘 창인이 가장 애정을 쏟거나 자신과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정체성은?

‘퍼즐 제작자’는 다소 수사적인 전략이기도 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지닌 아름다운 3-5 율격을 본받아 ‘개발자, 연구원, 퍼즐 제작자’가 하나의 리듬으로 읽히게끔 한 거죠. 동시에 말끝마다 구태여 유머를 덧붙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일종의 출구 전략이기도 하고요. 근래에는 아예 개발자와 연구원을 생략하고 퍼즐 제작자로만 소개하는 경우도 있으니 퍼즐 제작자에 대한 저의 마음이 아무래도 편애에 가까운 듯 합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옆자리에서 창인을 지켜보면서 느껴온 바이기도 해요. 하지만 유머가 향하는 대상을 유머가 압도하는 순간도 경계할 필요가 있겠죠? 이따금은요.

최근 ‘흑백요리사 2’에서 최강록 요리사가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척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인생이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쇄조림마’가 된 최강록처럼, 어쩌면 저 또한 퍼즐 제작자라는 정체성에 자승자박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매일 ‘관계들’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즐겁죠. 다만 그 즐거움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관계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퍼즐 이야기를 해봅시다. 웹 퍼즐 ‘관계들’은 열여섯 개의 글자 조각을 네 가지로 묶는 작업입니다. 무질서해 보이는 글자 사이에서 숨겨진 맥락을 찾아내다 보면 탐정 필립 말로(Philip Marlowe)나 시인 이상이 되는 것 같아요. ‘관계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출제자의 윤리 또는 원칙이 있다면?

‘관계들’을 만들면서 제 나름대로 지켜온 원칙을 이번 기회에 정리해보았습니다. 물론 원칙은 깨지기 위해 쓰입니다.

  1. ‘관계들’은 플레이어를 괴롭히기 위해 제작되지 않는다. ‘관계들’은 오로지 언어를 괴롭힌다.
  2. ‘관계들’은 오류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난 다음의 오류에 대해서는 자책하지 않는다.
  3. ‘관계들’은 서로 다른 품사의 단어들을 평등하게 취급한다. 그러나 단어 퍼즐 특성상 명사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으므로, 부러 그 외 품사들을 조명하는 게 허용된다.
  4. ‘관계들’은 퍼즐을 풀기 전 단어의 관계들을 푼 후의 관계들만큼이나 소중히 여긴다.
  5. ‘관계들’은 도둑질을 서슴지 않는다. 또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보통 퍼즐 게임은 이미지나 숫자를 많이 사용하는데, 창인은 글자를 재료로 삼았죠. 전공 때문일까요? 단어와 단어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뉘앙스의 차이를 즐기는 편인가요?

사실 글자를 재료로 삼은 퍼즐 게임도 레퍼런스가 많습니다. 모두가 아는 십자말풀이는 물론, 뉴욕 타임스에서 제공하는 워들(Wordle)이나 스트랜드(Strands), 워싱턴 포스트에서 제공하는 키워드(Keyword) 등이 있고요. 언어유희와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리버스 퍼즐(Rebus Puzzle)이라는 장르도 있습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에 등장하는 문제들이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넌센스 퀴즈도 텍스트 퍼즐 게임의 일종으로 볼 수 있겠고요.

백창인이 가장 사랑한다고 밝힌 리버스 퍼즐. 정답은 H₂O(H to O).

언급하신 리버스 퍼즐은 구체시와 다를 게 없죠. 문득 창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지는데요?

확실히 어릴 적에도 십자말풀이 앱을 다운로드 받아 플레이하거나, 친구들과 습관적으로 초성 게임을 즐기고는 했습니다. 물론 글쓰기를 좋아하는 데서 오는 영향도 크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초성, 중성, 종성이 모여 한 글자가 되고, 글자와 글자가 맞붙어 단어가 되는 현상 자체가 흥미로웠습니다. 닿자와 홀자의 규칙적인 인력이 물리 현상이라면, 그 인력으로 무수히 다른 의미가 생산되는 건 화학 작용인 셈이죠.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Sergei Mikhailovich Eisenstein)의 충돌 몽타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텍스트는 저에게 내용인 동시에 형식이고, 두 측면 모두 저에게 많은 즐거움을 줍니다.

퍼즐은 너무 쉬우면 시시하고, 너무 어려우면 제작자를 저주하게 되죠. 제작자로서 사용자와 줄다리기하는 방법은? 자신의 의도를 사용자가 정확히 파악하고 무릎을 칠 때 어떤 희열을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이 부분이 ‘관계들’을 만들면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였어요. 각자 퍼즐 게임에 대한 숙련도, 배경 지식, 특정 영역에 대한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적당한 난이도의 퍼즐을 만드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하루는 너무 쉽다는 피드백과 너무 어렵다는 피드백을 동시에 듣기도 했으니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우선 저 자신이 만족할 만한 난이도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커넥션’(Connections)과 달리 ‘관계들’은 추리 횟수 제한을 두지 않았어요. 여러 번 시도하더라도 모두가 퍼즐을 풀었다는 느낌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혹시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은 적은 없나요? 또는 저주는요?

‘관계들’에 대해 들었던 피드백 가운데 가장 뿌듯해지는 경우는 이런 말입니다. “이제 창인이 어떻게 문제를 내는지 파악했어요.” 개중에는 정말로 제가 의도한 것도 있고, 저조차도 몰랐던 경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의도를 파악했는지와 무관하게, ‘관계들’이 일방적인 문제의 장이 아닌 소통의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저에게는 새롭고 설레는 지점이에요.

영화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PTA)의 팬이기도 합니다. 그의 영화는 정말 유난스러운 동시에 우아하죠. 그리고 구조는 대개 우연한 사건이 겹쳐 거대한 운명을 만드는데, 영화를 만들거나 볼 때 느끼는 편집의 감각이 웹사이트나 퍼즐을 설계하는 과정에도 스민다고 느끼는지 궁금해요. 한편, 영화를 연출하는 것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건 세계관을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하죠. 영화 감독 백창인과 개발자 백창인, 두 자아가 충돌할 때도 있나요, 아니면 서로를 돕는 편인가요?

2023년에 「THE MOVERS」라는 영화를 연출했어요. 이때만 해도 ‘작품’을 만든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었죠. 청년희망적금을 깨서 큰돈을 들였기도 했고, 스무 명 가량의 스태프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었습니다. 육중한 촬영 장비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이 모든 시간과 인력과 돈을 동원하여 찍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이고, 일단 촬영이 끝나고 나면 더는 다른 걸 시도해볼 수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지만, 이 리듬이 저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그렇군요. 영화는 시간, 나아가 사람이 만드는 예술이기도 하니 생각보다 자신이 온전히 제어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웹 페이지를 만드는 일은 저에게 좀 더 산뜻한 느낌을 줍니다. 가령 ‘관계들’을 만들 때 저는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또는 정원을 가꾸듯 ‘작업’을 합니다. 힘에 부치면 잠시 쉬었다가 언제든 수정할 수도 있고요. 하나의 웹 페이지에 진정한 끝이란 없으며, 늘 존재하는 과정 중에 있을 따름입니다. “세계관”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웹을 하면서 그 단어를 떠올려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저 거대한 웹 공간 안에서 작은 URL을 점유하며, 사람의 속도로 호흡하고 생활합니다.

혼자 개발자로 취업을 준비하며 그렸던 미래와 새로운 질서를 만나 함께 걷고 있는 지금의 풍경은 자못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새로운 질서 이후 개발이나 창작을 대하는 창인의 태도나 세계를 바라보는 해상도에 어떤 즐거운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한편, 지금은 AG 랩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연구’라는 말은 학구적인 동시에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데, 요즘 창인의 모니터 화면을 가장 오래 차지하는 연구 주제는?

언젠가 구홍이 번역 중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의 『인터넷에서 시간 낭비하기』(Wasting Time on the Internet) 원고를 보내준 적이 있어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정의하기 쉽지 않다. 일을 해야 할 시간에 클릭질을 했다면 시간 낭비일까? 하지만 이미 몇 시간 동안 같은 화면 앞에서 일했으니, 솔직히 휴식이 필요했다. 잠시 일 생각은 접어두고 인터넷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었던 것이다. 흔히 연상하는 ‘시간 낭비’와 달리 고양이 동영상만 본 건 아니었다. (물론 가끔 보기도 하지만.) 대통령, 록스타, 전함 같이 나는 우연히 발견한 것에 흥미를 느꼈다. 클릭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흥미로웠기에 기꺼이 클릭했다. 물론 클릭하지 않고 지나친 게 훨씬 더 많았다.”

AG 랩에서의 연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저는 갑자기 푸리에 변환이 궁금해져서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봅니다. 보던 중, 동료 디자이너 재현의 웹사이트에 실린 글이 이제야 이해가 될 것 같아 다시 읽어 보기로 하죠. 얼마 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특별전을 연다는 이메일을 받고 웹사이트에 들어가 내용을 확인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감독이 더욱 궁금해져 나무위키 문서를 엽니다. “그의 영화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을 영화에 도입했으며…”를 읽는 순간 하이퍼링크를 클릭해 브레히트를 공부하죠. 저의 모니터 화면은 늘 산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내일은 애그니스 마틴의 일생을, 또는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 1급 배정한자를, 또는 고양이 동영상을 연구할 수도 있겠죠. 다시 골드스미스로 돌아가 마무리하자면, “인터넷에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단순한 죄책감을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복잡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어쩌면 찬미”할 따름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인턴에서 연구원으로, 또 퍼즐 제작자로 꽤 숨 가쁘게, 하지만 밀도 있게 달려왔습니다. 지금 창인의 퍼즐에서 찾고 있는 다음 조각은 어떤 모양일까요?

저는 그저 제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뿐입니다. 고개를 잘 들고 걷기만 한다면 그 길에 무엇이 있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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