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그에서 하이퍼링크로
1974년, 『홀 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의 마지막 발행호 뒷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끝없이 갈망하라. 끝없이 어리석어라.” 훗날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인용하며 더욱 유명해진 이 말은 『홀 어스 카탈로그』가 품은 정신의 핵심이었다.
보통 ‘카탈로그’라 하면 정갈한 상품 목록을 떠올리지만, 이 책은 그 고정관념을 뒤엎었다. 침낭과 백팩이 『도덕경』(道德經) 옆에 놓이고, LSD 체험기가 건조 식품 광고와 나란히 실렸다. 도구와 지식, 실용과 철학이 페이지마다 뒤섞여 있었다. 이 모든 혼합은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가 던진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당신은 어떤 도구로 자신의 삶을 만들고 싶은가?” 이 질문은 구매의 권유라기보다 삶의 방향을 탐색하라는 초대장이었다.
브랜드가 말한 ‘도구’는 물리적인 물건만을 뜻하지 않았다. 침낭이나 도끼처럼 손에 쥘 수 있는 생존 도구와 나란히, 『도덕경』 같은 텍스트가 삶을 꾸리는 데 필요한 사유의 도구로 소개됐다. 물질적 자립과 정신적 자립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는 도구의 정의를 넓혔다. 상상해보라. 등산 가방을 멘 채 새벽 산에서 『도덕경』을 읽는 사람을.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지만, 브랜드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시작이다.”
『홀 어스 카탈로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구조에 있었다. 각 항목은 독립적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하이퍼링크를 통해 이어져 있었다. 침낭에서 출발해 공동체 주택으로, 생태적 건축으로, 자급자족 농업으로. 독자는 이 흐름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지식의 비선형적 탐색을 경험했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났다. 한마디로 이 책은 종이 위의 하이퍼링크였고, 아날로그 시대의 하이퍼텍스트 실험장이었다. 브랜드가 만든 것은 목록이라기보다 지식의 지도였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차례다. 당신의 웹사이트는 당신만의 『홀 어스 카탈로그』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이 책이든, 음악이든, 코드 조각이든 당신의 삶을 구성하는 ‘도구’는 무엇인가? 당신은 방문객이 그 도구들 사이를 자유롭게 항해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도록 의미 있는 하이퍼링크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가?
1985년, 브랜드는 그 정신을 디지털로 확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WELL’(Whole Earth ’Lectronic Link)을 열며, 브랜드는 또 한 번 연결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WELL은 광고 없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대화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디지털 공동체였다.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와 닮았지만, 방향은 전혀 달랐다. 자발적인 협업과 느린 글쓰기, 농담과 철학이 뒤섞인 공간. 하지만 WELL의 이상은 곧 상업화의 물결 속에서 왜곡된다. 더 많은 사용자가 유입되고 광고가 붙기 시작하면서 느리고 진지했던 대화는 점차 소란스럽고 피상적인 정보의 흐름으로 대체됐다. 연결은 남았지만, 감각은 점점 사라졌다.
『홀 어스 카탈로그』와 WELL은 연결의 윤리와 감각을 실험한 흔치 않은 시도였다. 둘이 보여준 연결은 빠르거나 편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느리고, 엉뚱하고, 스스로 경로를 찾아야 하는 연결이었다. 오늘날의 하이퍼링크는 그 정신을 계승하지만, 본질을 잃을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브랜드가 남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끝없이 갈망하라. 끝없이 어리석어라.” 하지만 그 갈망은 그저 정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여정이어야 한다. 하이퍼링크는 클릭되는 길이 아니라, 읽는 이의 감각으로 완성되는 지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