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만들어진 웅덩이에서 헤엄치기: 스페셜 피시
이 글은 2000년 6월 『릿터』 24호에 실렸다. 스페셜 피시를 리뷰했다. 문학 전문지에 실린 최초의 웹사이트 평론이다. 이 글을 통해 처음 만난 민음사 편집자 정기현은 몇 달 뒤 자연스럽게 「새로운 질서」의 친구가 됐다.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結婚できない男), 「트릭」(トリック)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중견 배우 아베 히로시(阿部寛)의 공식 웹사이트는 웹상에서 배우만큼이나 유명하다. 1996년 무렵 한 팬이 만든 이래 기술을 갓 익힌 초등학생이 꾸민 듯한 디자인을 25년여 동안 유지하며 워드프레스 같은 콘텐츠 관리 시스템의 도움 없이 꾸준하고 성실하게 업데이트되는 점에서. 1990년 무렵 월드 와이드 웹이 등장하고, 30년 사이 기술은 발전을 거듭했다. 이 웹사이트는 오늘날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기술로 구현됐지만, 작동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배우의 공식 웹사이트로서는 이만으로 충분하다. 시대착오적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용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 테다.
<frame> 태그를 통해 크게 메뉴와 주 화면으로 나뉜 웹사이트는 주된 목적, 즉 배우를 소개하는 데 온전히 이바지한다. 홈페이지에는 새 소식과 배우의 약력이 자리한다. 색색의 불릿 기호로 강조된 메뉴를 클릭한다. 메뉴에 따라 배경이 바뀐다. 배우가 출연한 작품의 정보를 거쳐 1980년대 중반 패션 잡지 『맨스 논노』(メンズ ノンノ) 표지에 실린 조몬인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오늘날 웹사이트에서 애니메이션 같은 효과를 구현하는 데 들이는 노동력은 다소 덧없어 보인다. 시대착오적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 테다. 오히려 여전히 구형 해치백을 몬다는 배우의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한편, 단순한 HTML 파일만으로 이뤄진 덕에 웹사이트는 쾌적한 접속 속도를 판가름하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훌륭한 웹사이트라도 이보다 느리면 말짱 허사라는 듯. 그래서일까.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콘텐츠, 디자인, 접속 속도를 종합해 이 웹사이트를 최초의 웹사이트를 제외하고 으뜸으로 꼽기도 했다.

멀지 않은 과거에 사랑하는 친구들과 이 웹사이트에 관해 이야기하다 엘리엇에게 물었다. “만약 우리가 합법적으로 이 웹사이트의 서버에 접근할 수 있다면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떤 완벽함 앞에서는 누구나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카이젤 스타일 수염에 선글라스를 쓴 남성의 머리 너머 하늘에 구름이 피어났다. “그나저나 요즘 이런 걸 만들고 있는데 아직 이름을 못 정했거든…” 답변 대신 엘리엇이 보여준 것은 한 웹사이트의 프로토타입이었다. 밝은 회색(#e6e6e6) 배경에 높이가 32픽셀로 고정된 색색의 사각형들을 보자 로럴이 말했다. “와, 꼭 물고기 비늘 같다!”
하와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마우이에서 나고 자라 물과 함께해온 엘리엇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조언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스페셜 피시’(Special Fish)는 요컨대 사용자끼리 목록을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다. 이메일 주소, 사용자명, 암호, 현재 위치를 차례로 입력한 뒤 마음에 드는 색까지 선택하면 사용자는 한 마리 물고기로서 넓고 깊지만 수압은 낮은 이 웅덩이에 뛰어들 수 있다.
플랫폼으로서 온갖 소셜 미디어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용자의 욕망을 제약하고, 사용자는 이미 이 점에 익숙하다. 예컨대 트위터에서 사용자는 하고 싶은 말을 280자 이내로 줄일 수밖에 없다. 인스타그램은 사용자에게 이미지나 영상을 요구한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외부 하이퍼링크 이동 기능을 차단함으로써 사용자가 영원히 인스타그램에 머물기를 바란다. 전통적인 플랫폼인 책이나 잡지 또한 마찬가지다. 사용자는 내용을 편집하지 못하고, 다음 내용을 읽기 위해서는 손가락으로 부지런히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사용자에게 부여된 권한은 그뿐이다. 이렇듯 제약은 플랫폼을 특징짓고, 어떤 이유로든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은 제약에 묵시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다. 스페셜 피시 또한 다르지 않다. 콘텐츠는 반드시 글이어야 하고 목록의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단순하고 힘센 제약이 있다.
물론 나도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긴 해. 그런데 이런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건 터보 제트 엔진을 장착한 자전거를 타고 쉼 없이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일 같아.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속도로 주변에 휴게소나 작은 마을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어.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타임 라인, 사용자를 독려하는 ‘좋아요’ 기능, 일상 속 목소리까지 추적한다는 광고 추천 알고리즘 앞에서 글, 이미지, 영상 등 사용자가 게시하는 아름다운 추억은 물화한다. 엘리엇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스페셜 피시에는 의도적으로, 또는 단순히 기술적 한계 때문에 사용자가 소셜 미디어에 기대할 만한 기능은 사라졌다. 1997년 최초의 소셜 미디어로 불리는 식스 디그리(Six Degrees)가 등장한 이래 소셜 미디어는 각 사용자의 콘텐츠를 한데 모아 보여줄 보다 효율적인 방식을 고민해왔다. 스페셜 피시는 이런 고민 자체를 무시함으로써, 또는 초창기 웹의 자연스러운 구조로 회귀함으로써 뜻밖의 경험을 선사한다. 관리자인 엘리엇은 자비로 플랫폼을 구축해 제공한 것 외에 더는 개입하지 않는다. 이 웅덩이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용자 자신뿐이다. 그 덕에 사용자는 한눈판 사이 놓친 것은 없는지 염려하거나 숫자 때문에 실제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시기할 필요 없이 다른 사용자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웅덩이를 마음껏 헤엄칠 수 있다. 이는 기존하는 소셜 미디어의 놀랄 만한 순기능과 견줄 만큼 이롭다. 따라서 스페셜 피시를 사용한 뒤 스마트폰에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아이콘을 터치하는 일이 뜸해진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밖에 눈에 띄는 점은 사용자의 데이터베이스가 누구에게나 익숙한 텍스트 파일에 저장된다는 사실이다. 기술적으로든 개념적으로든 텍스트 파일은 스페셜 피시에서 서로 묶여 나간다. 엘리엇이 공공연히 스페셜 피시를 ‘함께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로 부르는 까닭이다.
2020년 봄, 내가 정식으로 문을 연 스페셜 피시에 가입한 무렵 나를 포함해 아홉 마리에 불과하던 물고기는 이제 어림잡아 1,000마리가 훌쩍 넘는다. 요란한 홍보 없이 너그러움과 호기심에서 비롯한 입소문만으로 (어차피 웹상에서는 유명무실한 어휘지만) 전 세계에서 모여든 물고기는 각각 목록으로 만들어진 웅덩이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헤엄친다.
성실하게 일기를 쓰는 물고기, 이제껏 만나 온 벌새를 둘러싼 추억에 심취한 물고기, 가입을 반복해 지메일 주소를 수집하는 물고기, 부동산을 매도하고 매수하는 과정을 연재하는 물고기, 웹사이트의 ‘뒤로 가기’ 버튼에 관한 단편소설을 써 보겠다고 공언한 물고기, 자신과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를 소개하는 데 집착하는 물고기, 거리에 버려진 농구공이 이동한 궤적을 추적하는 물고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물고기를 조롱하는 물고기… 이렇듯 자신에게 집중하는 물고기들 가운데 내가 사귄 한 물고기의 정체는 일본의 작은 섬에 사는 캐나다인이었다. 로마자, 가나, 한자, 세 문자로 구체시를 선보이는 그에게 나는 코딩을, 그는 (굳이 바라지는 않았지만) 내게 몽골어를 가르친다. 스페셜 피시 덕에 누군가는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고, 누군가는 몽골어로 지금 일본의 상황은 어떤지 묻는다.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1이 문학 집단 울리포(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 Oulipo)에 가입하면서 자유가 아닌 제약을 창작의 뿌리와 줄기로 삼았듯 목록만으로도, 오히려 목록 덕에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25년이라는 작지 않은 격차에도 스페셜 피시는 몇 가지 점에서 아베 히로시의 공식 웹사이트와 닮았다. 방문자를 위협할 만큼 요란한 효과보다는 콘텐츠 자체에 집중하고, 그래서 가볍고 빠르다. 겉모습은 느슨하지만, 기술을 대하는 맥락과 태도는 솔직하면서 오늘날 느닷없이 급진적이다. 무엇보다 마주할 때마다 조금씩 변화한다. 이는 가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처럼 익숙하면서 새롭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미련이 남지 않는 덕에 다시 만나는 일 또한 무람하지 않다.
2005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 자리에서 미국의 시인이자 아방가르드 작품을 아카이빙해 소개하는 우부웹(UbuWeb)2의 운영자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무엇이 인터넷상에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말은 끔찍하게 진실이다. 인터넷과 거의 동의어가 된 웹이 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또 다른 차원에서 현실을 대체할 예정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더더욱. 오늘날 정보는 헤아리는 일 자체가 무용할 만큼 무수하고, 디지털화하지 않은 정보는 어지간히 여유롭거나 부지런하지 않은 이상 수용자에게 도달하지 않는다. 보존할 만한 유산을 아카이빙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인터넷 아카이브의 웨이백 머신은 간헐적으로 스페셜 피시를 아카이빙하기 시작했다. 영원성을 획득하는 가장 작은 조건이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조금 다른 말로 저장되는 일이라면 스페셜 피시는 이미 영원하고, 이름처럼 그래서 특별하다.
일요일 오전마다 내 메일함에는 스페셜 피시의 소식이 도착한다. 지난 한 주 동안 엘리엇이 물고기들을 하나하나 관찰해 기록한 일종의 생태 보고서다. 한편, 엘리엇은 수행적 퍼포먼스로서 온갖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를 공유하는 깃허브(GitHub)에 스페셜 피시의 소스 코드를 공개하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즉,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이를 내려받아 자신의 서버에 물고기를 기를 또 다른 웅덩이나 나아가 체리를 재배할 과수원을 구축하는 것도 그리 황당한 일은 아니다.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라는 문학의 전통적인 정의를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더라도 스페셜 피시뿐 아니라 모든 웹사이트는 얼마간 문학성을 담보한다. 「새로운 질서」에서 이야기하듯 컴퓨터 언어를 도구 삼아 다루는 일, 즉 코딩이 또 다른 차원의 글쓰기인 까닭이다. 문학에서 작가의 인식이 언어를 거쳐 작품으로 완성되듯 웹사이트 또한 언어가 작가의 인식을 거친 결과물이다. 게다가 웹 브라우저상에서 간단한 단축키만으로 누구나 엿볼 수 있는 웹사이트의 소스 코드에서는 인식의 과정과 그를 둘러싼 고민이 드러나고, 태생적으로 열려 있는 웹에 귀속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활동을 이끄는 첨병 역할을 맡기도 한다. 웹사이트가 문학 잡지에 실리는 리뷰의 대상으로 여러 책 사이에서 어색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그런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은 것은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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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은 울리포의 핵심 멤버로서 문학을 ‘제약’이라는 규칙 안에서 벌이는 유희적 게임으로 여겼다. 가장 극단적인 실험으로 알파벳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e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완성한 300페이지 분량의 장편 소설 『실종』(La Disparition)』이 있다. 후속작인 『돌아오는 사람들』(Les Revenentes)에서는 모음으로 오직 e만을 사용했다. 이처럼 페렉에게 제약은 창작을 억압하는 족쇄가 아닌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고 기존의 관습적인 표현에서 벗어나게 하는 원천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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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웹은 현재 현대 사운드 아트부터 1986년 앤디 워홀과의 아미가 컴퓨터에 대한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몇몇 현대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기록 보관소에 제출했지만, 그 컬렉션은 여전히 골드스미스 자신의 취향에 따라 대부분 안내된다. 프랑스 철학자 평론가 Roland Barthes의 강의, Claire Denis의 긴 댄스 영화, 멀티미디어 잡지 Aspen의 디지털 재창조 등을 찾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