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다운
아무리 짧더라도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워드프로세서를 실행하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유혹과 마주한다. 수백 가지 글자체, 현란한 색상 스펙트럼, 나아가 정렬, 간격, 굵기 조절 등을 위한 무수한 아이콘… 이 모든 도구는 더 나은 글을 쓰도록 돕는다는 명목 아래 집중력을 훔치고 본질, 즉 ‘쓰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정작 써야 할 문장 대신 그저 제목과 각주의 완벽한 형태부터 고민하게 된다. 물론 그 또한 아름다운 일이지만, 문제는 순서다.
「새로운 질서」에서 사랑하는 마크다운(Markdown)은 모든 시각적 소음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이다. 2004년 3월 19일, 기술 블로거이자 UI 디자이너인 존 그루버(John Gruber)와 에런 스워츠(Aaron Swartz)가 만든 이 문법의 철학은 체리 한 알처럼 단순하다. “그저 명확한 구조를 지닌 평범한 텍스트로 글을 쓰자. 보기 좋게 꾸미는 일은 나중 일이다.” 마크다운을 사용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중요한 태도를 받아들이겠다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 내용이 먼저: 마크다운은 구조와 스타일을 철저하게 분리한다. 글쓴이는 오직 내용에만 집중하고
#이나*같은 최소한의 기호로 구조만 표시한다. 그 자체로 글의 겉모습보다 고갱이를 먼저 채우는 훈련이 되기도 한다. - 가독성은 무기: 마크다운으로 쓴 글은 그 자체로 특별한 프로그램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다. 복잡한 태그나 코드가 아닌 인간의 눈에 직관적인 기호를 사용하는 까닭이다. 이는 우리의 글이 어떤 환경에서도 의미를 잃지 않음을 보장한다.
- 도구로부터의 자유: 마크다운은 특정 회사나 소프트웨어에 종속되지 않는 평범한 텍스트 파일이다. 10년 전에 마크다운으로 쓴 글은 10년 뒤에도 여전히 열리고 편집할 수 있다. 이는 특정 버전의 워드프로세서가 없으면 열리지 않는 파일과는 다른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성이다.
한편, 마크다운의 문법은 체리 서너 알 먹는 동안 배울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 다음은 가장 핵심적인 몇 가지 약속이다.
제목
#의 개수로 제목의 위계를 표현한다. # 하나는 가장 큰 제목(예컨대 HTML에서는 <h1>)이고, ##는 그 다음(<h2>), ###는 그 다음(<h3>이다. 제목을 정하는 것은 문서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세우는 일이다.
# 가장 중요한 제목
## 그보다 덜 중요한 제목
### 그보다 덜 중요한 제목
#### 그보다 덜 중요한 제목
##### 그보다 덜 중요한 제목
###### 그보다 덜 중요한 제목
강조
글자나 단어, 구절 등을 *로 감싸면 글자를 기울이고, 로 감싸면 굵게 표시한다. 목소리의 톤을 조절하듯 문장의 뉘앙스를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저것은 더 중요하다.
목록
-, *, + 기호로 순서가 중요하지 않은 목록을, 숫자로 순서가 중요한 목록을 만든다. 생각의 파편을 질서 있게 정리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 체리
- 실패
1. 첫째
2. 둘째
인용
> 기호는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려오는, 지적인 대화의 제스처다.
> 시간은 위대한 스승이지만, 불행히도 자신의 모든 제자를 죽인다.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 인생에서 가장 진귀한 것은 시간이다. —이소룡(Bruce Lee)
하이퍼링크
[보여줄 텍스트](연결할 주소) 같은 형식으로, 우리의 글을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하이퍼링크를 만든다.
- [새로운 질서](https://neworder.xyz)
- [민구홍 매뉴팩처링](https://minguhongmfg.com)
- [민구홍](https://minguhong.fyi)
마크다운은 HTML의 가장 인간적인 얼굴이다. 마크다운으로 작성된 문서는 버튼 하나만으로 완벽한 HTML 구조로 변환될 수 있다. 즉, 마크다운으로 글을 쓰는 행위는 이미 웹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가장 효율적이고 구조적인 첫걸음이다. 마크다운은 화려한 도구의 유혹을 떨치고, 오직 글의 구조와 내용에만 집중해보라고 제안하며 글쓰기의 본질이 결국 명료한 생각임을 일깨워주는 이 시대의 가장 정직한 문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