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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질서, 디스코드 서버 개설해

내 웹사이트는 지식의 강을 따라 흐르는 집이다. 당신은?

이 글은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 로럴 슐스트의 글 「My website is a shifting house next to a river of knowledge. What could yours be?」를 번역한 결과물이다. 원문은 크리에이티브 인디펜던트에서 읽을 수 있다. 이 글은 예술가들에게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도록 권하지만, 그 대상이 반드시 예술가일 필요는 없다. 번역과 게재를 허락해준 로럴에게 감사드린다. 참고로 로럴은 교육자뿐 아니라 디자이너, 작가, 편집자, 개발자 등으로 활동하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로 소개해줄 것을 요청했다.

웹사이트란 무엇인가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예술 학교에서 인터랙티브 디자인과 인터넷에 관해 강의해왔다. 수업 시간에 나와 학생들은 인터넷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또는 그 반대)은 물론이고 기술의 발전이 예술과 얼마나 자주 겹치는지 배우고, 웹을 이루는 기본적인 컴퓨터 언어인 HTML과 CSS을 중심으로 약간의 자바스크립트를 익혀 웹사이트를 만든다. 하지만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은 당혹스러운 이메일을 보내오곤 한다. “그럼 웹사이트는 실제로 어떻게 만드나요?” 이 질문은 이상했다. 나 자신에게도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웹사이트란 무엇인가? 잊기 쉬운 질문이다. 오늘날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는 수백만 가지 방법이 있고, 그 풍부함은 오히려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핵심은 여전히 예전과 같다.

웹사이트는 어딘가에서 가동하는 서버에 저장된 파일 또는 파일의 모음이다. 서버는 항상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로, 누군가 웹 브라우저에 URL을 입력하면 웹사이트를 제공한다. 서버를 사용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비용이 든다. 서버의 고유 주소를 나타태는 일련의 숫자인 IP 주소와 연결할 도메인명을 사용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한편, 일반적으로 파란색 밑줄로 드러나는 하이퍼링크는 웹을 숨쉬게 하는 산소다. 모든 웹사이트에 하이퍼링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하이퍼링크는 웹사이트 안팎을 연결한다.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실제로 웹사이트를 만드는 법을 묻는 학생들이 생각하는 웹사이트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웹사이트를 가리킨다.

하지만 오늘날 웹이 우리가 자란 시절의 웹과 많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편이 건강하다. 이미 충분히 배웠음에도 학생들이 웹사이트를 어떻게 만드는지 되묻는 것은 오늘날 웹사이트를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마찰과 사회적 압박을 암시한다.

처음에는 그저 편리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 핀터레스트 같은 소셜 미디어는 사용자보다 광고를 우선시하는 사기업이다. 사용자의 행복은 주요 관심사가 아니므로 사용자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생각하기만 해도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소셜 미디어 속 목소리가 뒤엉킨 디지털 불협화음 시대에 자신을 돌볼 사람은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따라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기록하려는 사람일수록 웹사이트가 필요하다.

명확성은 웹사이트가 지닌 수많은 목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웹사이트는 놀랍고, 기억에 남고, 기념비적이고, 진정하고, 충격적이고, 예측할 수 없고, 지루하고, 기괴하고, 조용하고, 미묘하고, 놀라울 수 있다. 이는 반드시 웹사이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로 제한할 필요도 없다. 혼란스러움이나 놀라움은 여러 웹사이트로 드러낼 수 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웹사이트의 특징은 주체인 동시에 객체라는 이중성이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작가인 동시에 건축가가 된다. 게다가 웹사이트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웹사이트는 어떤 종류의 방일까? 아니면 집에 더 가까울까? 배? 구름? 정원? 웅덩이? 그것이 무엇이든 웹사이트는 만드는 사람을 반영한다.

왜 웹사이트가 필요할까

그 어느 때보다 웹의 미래를 이끌 사기업이 아닌 개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웹이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노드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되새긴다면,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웹을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이때 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예술가들의 역할이 도드라진다.

예술가들은 세계를 창조하는 데 능하다. 그 세계는 일차적으로 예술가 자신을 위하고, 이차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향한다. 여기서 ‘세계’는 언어를 비롯해 스타일, 규칙 등 예술가들이 만든 모든 것을 가리킨다. 웹사이트를 통해 예술가들은 작품뿐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예술가와 웹사이트는 선순환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저한테 웹사이트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예술가들에게 묻고 싶다. 웹사이트가 자신의 방법론을 보완할 수 없을까? 웹사이트로 사람들에게 재미있거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수 없을까? 웹사이트가 작품 자체가 될 수 없을까?

웹사이트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저 완성된 작품을 보관하는 창고일 필요는 없다. 사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건 발행하는 순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웹사이트를 포함해 상요작용을 수반한 어떤 것이든 본질적으로 영원한 미완성 상태다. 어딘가 불완전하고 이따금 벌레도 몇 마리 꼬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웹사이트가 품은 아름다움의 요체다. 웹사이트는 시간성을 품은 살아 있는, 따라서 죽기도 하는 공간이다.

웹사이트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방은 안정감을 준다. 유한하면서 종종 특정 목적을 띠는 까닭이다. 동시에 방은 유연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내용물을 옮기거나 임시 칸막이를 넣을 수도 있다. 요소를 공간적으로 병치하거나 하이퍼링크를 통해 방을 오고갈 문을 만들 수도 있다.

정보 과부하 시대에 최고의 품격은 의미와 맥락입니다. —루이 로세토(Louis Rossetto)

크리에이티브 인디펜던트 초창기에 나와 동료들은 종종 이 웹사이트를 강가에 지어진 집으로 생각했다. 웹사이트에 모인 인터뷰는 강물이었다. 우리는 매일 강물을 모으고 마셨다. 어제가 액자가 걸렸던 곳에 오늘 아침 문이 생기듯 강물이 포함한 영양소는 이따금 집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지식이라는 건축가 덕이었다. 물론 이 은유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완벽하지는 않다. 어쨌뜬 허무는 데는 웹사이트보다 집이 훨씬 어렵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선반

방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보자. 선반이 하나 놓여 있다. 이제 방보다는 조금 더 생각하기 쉽다. 선반에는 무엇을 놓을 수 있을까? 책이나 화병? 어쨌든 지나치게 무거우면 선반은 머지않아 부서질 것이다. 목적을 떠나 물건은 작을수록 좋다. 작으면 가볍고 가벼우면 바꾸기 쉽다.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이 있다면, 일단 치워두고 선반에 무엇을 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개인 웹사이트가 소셜 미디어 플랫폼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그 구조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 야후! 또는 구글 같은 대기업 플랫폼과 독립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리트 갓(Orit Gat)

식물

식물은 천천히 스스로 자란다. 기름진 땅을 골라 적당히 물을 주고 햇빛을 쬐주면 웹사이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웹사이트에 생각의 씨앗을 심은 뒤 스스로 자랄 시간을 주자. 몇 년 뒤에는 꽃이 필지 모른다. 운이 좋다면 열매가 맺힐지 모른다. 새로 사귄 친구, 사람들의 감탄, 얼마간의 돈 등 열매의 맛은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흥분하거나 원대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 편이 좋다. 하지만 그것은 요점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식물은 천천히 스스로 자란다.

누구나 자신만의 작은 인식론적 정원을 가꾸며 씨앗에서 아이디어를 키우고 이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과 공유합니다. —폴 포드(Paul Ford)

정원

미국의 방송인 겸 음악가 프레드 로저스는 마음속에 정원을 만든다면 그곳에서 생각을 가꿀 수 있다고 말했다. 생각이 묘목으로 탈바꿈해 스스로 설 수 있다면 집 밖으로 나가 정원에 옮겨 심을 수 있다. 정원은 계절마다 달라진다. 특별한 일이 없는 겨울에는 느긋하게 일기를 쓰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끊임없이 뭔가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식물은 우리에게 균형의 의미를 되새겨준다. 조용히 앉아 웹사이트에 생각을 벌여놓듯 정원에서 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호기심보다 정보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프레드 로저스(Fred Rogers)

웅덩이

일시적으로 빗물이 모인 웅덩이는 폭풍우가 지나간 뒤 생긴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폭풍이 일기도 한다. 어떤 웹사이트를 만들지 모호할수록 괜찮은 일이다. 웹사이트는 웅덩이처럼 완벽하지 않다. 어떤 웅덩이는 오랫동안 생물이 자라고, 어떤 웅덩이는 하루만에 사라지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비추더라도 웅덩이가 영원할 필요는 없다. 내일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면 폭풍우는 다시 일고, 어딘가에는 웅덩이가 생길 것이다. 웅덩이는 천천히 증발한다. 웹사이트 또한 마찬가지다.

바닷속으로 끝없이 가라앉는 바위

당신은 할 일이 많고, 틈틈이 관리해야 할 웹사이트는 필요없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웹사이트를 바위로 생각해보자. 몇 시간 동안 해변가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이윽고 바다로 던져버린 아름다운 바위. 당신은 바위가 언제 바닥에 닿을지 알 수 없고, 어쩌면 신경도 쓰이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바위는 널려 있다. 괜찮은 생각이 떠오르면 웹사이트를 만들고,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바다로 던져보자.

오늘날 웹은 다국적 기업, 독점 애플리케이션, 읽기 전용 기기, 검색엔진 알고리즘, 콘텐츠 관리 시스템, 위지위그 에디터, 디지털 퍼블리셔 등과 함께 상업화를 향한다. 이때 컴퓨터 언어를 다루는 일, 즉 코딩이 자기 주도적인 글쓰기인 점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온라인 작품 또는 출판물로서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이 느닷없이 급진적인 행위가 되고 있다. —J.R. 카펜터

웹은 우리가 만든다

앞서 나열한 여러 은유 가운데 무엇이든 웹사이트가 될 수 있지만, 오늘날 자주 눈에 띄는 ‘클라우드’, 즉 구름 같은 은유와는 거리가 멀다. 인터넷은 구름이 아니다.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없을뿐더러 신비하거나 만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초기 특허 도면에서 인터넷은 잉크 방울이 물속에서 퍼지는 모습이나 뇌의 뉴런, 또는 뭔가 폭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름은 인터넷이 개별성을 지닌 컴퓨터 각각이 서로 연결돼 대화하는 현실을 흐릿하게 만든다.

얼마전 월드 와이드 웹은 최근 스물아홉 살을 맞았다. 웹의 생일 파티에서 그의 아버지 팀 버너스리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웹은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본명과 달리 세상과 절반 정도만 이어져 있다. 이 격차를 줄여야 한다. 동시에 웹이 진정으로 우리를 위한 것임을 되새겨야 한다. 웹이 두려움을 확대하고 분열을 심화하기보다 우리의 희망을 반영하고 꿈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한편, 1980년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와 마크 존슨(Mark Johnson)은 『삶으로서의 은유』(Metaphors We Live By)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은유는 그저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다른 은유를 통해 은유 너머를 볼 수 있다. 은유로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은 시각, 촉각, 청각 같은 감각과 같다. 은유는 세계를 지각하고 경험하는 독특한 방식을 제공한다. 은유는 우리에게 촉각만큼이나 값지다.

이제 구름 대신 웹의 개별성과 협력성을 드러내는 은유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웹을 만들기 위한 책임을 되새길 수 있다. 지식의 강 옆에 정원이나 웅덩이가 있다면, 웹은 이들을 가꾸거나 잊어버리는 새떼나 문장부호의 바다다. 웹사이트가 품은 가능성이 우리의 정체성과 생각, 꿈을 만들고 확장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웹사이트와 함께해야 한다. 사기업들이 인터넷과 웹을 위협하는 오늘날, 예술가들은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이다. 그들은 웹사이트가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폭넓게 제시할 수 있다. 웹사이트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집단적 욕망을 실현하는 개별적 실천이다. 예술가일수록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광고가 온라인 기업의 유일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통념과 플랫폼 운영 방식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통념, 이 두 가지 통념이 오늘날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을 제한합니다. 두 가지 통념 앞에서 우리는 조금 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팀 버너스리

이 글을 쓴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는 디자이너, 예술가, 저술가, 교육자, 기술학자로, 사려 깊게 조성된 환경을 통해 호기심, 배움, 성찰을 길러 내는 공간을 창출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예일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 등에서 강의했고,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 울트라라이트 스쿨(ultralight school) 등 자율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교육 활동을 이어 왔다. 링크드 바이 에어(Linked by Air), 킥스타터(Kickstarter), 아레.나(Are.na) 등에서 디자인과 개발,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담당했다. 2025년 가을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샘 폭스 디자인 시각 예술 대학에 교수로 부임했다. https://laurelschwul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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