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와 탁구 치는 법: 프랑스 악어의 경우
2014년 무렵 패션 브랜드 라코스테(Lacoste)의 의뢰로 쓴 시. 어쩌다 의뢰를 받았는지는 도무지 생각 나지 않는다.
악어와 탁구 치는 법은 이미 여럿이 소개돼 있다. 하지만 이 교본에서는 상대가 프랑스 악어일 경우 특히 유념해야 할 점 몇 가지를 소개한다. 프랑스 악어는 일반 악어와 달리 특유의 문화적 세련미와 지적 허영심을 지닌 까닭에 더욱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에펠탑처럼 우아하고, 세느강처럼 유연하게.
-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 프랑스식으로 인사한다. 이때 지나치게 볼을 부비지 않는다. 끝보다 시작이 중요할 때가 있다.
- 단정한 복장을 갖춘다. 소속된 팀 로고가 새겨진 공식 유니폼이나 잘 다려진 수트를 추천한다. 상하의 색은 검정이나 하양으로 통일한다.
- 탁구채와 탁구공의 크기, 무게, 모양은 세계 규격을 따른다. 프랑스 악어라고 특별히 대우할 필요는 없다. 상대는 무엇보다 공정성을 중요시한다.
- 탁구대 주변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다. 상대가 흥분하면 꼬리로 탁구대를 뒤집을 수 있다. 이는 경기 중단뿐 아니라 센강의 수위를 높일 수 있다.
- 경기를 시작할 즈음 음악을 재생한다. 단, 레이어가 촘촘한 전자음악은 되도록 피한다. 상대가 탁구채를 잡기도 전에 맥주를 마시러 떠날지 모를 일이다. 에디트 피아프나 세르쥬 갱스부르의 샹송을 권한다.
- 경기 중에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승리나 패배, 즐거움, 비아냥거림을 암시하지 않는다. 상대는 감정 표현의 절제를 우아함의 척도로 여긴다.
- 무엇보다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 상대는 미학적 가치를 중요시하므로, 자세는 하나하나가 르누아르의 그림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 세트마다 점수를 비롯해 탁구공의 궤적을 기록해둔다. 그 숫자와 탁구공이 만드는 선의 조합에 아름다움을 느껴 수집을 일삼는 큐레이터가 의외로 적지 않다. 이는 나중에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될지 모른다.
- 휴식 시간에 토론을 청하는 경우를 대비해 미리 질 들뢰즈의 인식론이나 알랭 바디우의 마오주의를 공부해둔다. 상대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 경기가 끝나면 프렌치키스로 헤어진다. 영영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시작보다 끝이 중요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