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컴퓨터, 첫 번째 웹사이트
내가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은 일곱 살 무렵이던 1991년 동네 음악 학원에서였다. 물론 우리 집 서재에는 일간지 기자였던 아버지의 송고용 랩톱이 있었지만, 꼬마가 함부로 다가가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렇게 음악 학원에서 처음 본 매킨토시 LC의 자태는 지금 바라봐도 아름답다. 디지털 피아노 옆에 놓인 작은 기계는 꼬마에게 아름다움의 기준이 됐고, 컴퓨터뿐 아니라 물건을 둘러싼 꼬마의 취향을 지나칠 만큼 고상하게 만들었다.
하루 연습량을 채우고 시험까지 통과하면, 학원 선생님은 마스터키보드와 컴퓨터가 자리한 방 문을 열어주셨다. 그렇게 나는 버튼이 하나뿐인 마우스를 쥐고 아동용 미술 프로그램인 ‘키드 픽스’(Kid Pix)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크레파스나 물감 없이. 마음껏 그림을 그려도 손이 지저분해지지 않은 놀라움이란! 물론 음악 학원에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거나 바이올린 현을 켜는 일도 즐거웠지만, 언젠가부터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나아가 한 번이라도 더 컴퓨터를 만져보기 위해 음악 학원으로 향했다. 한걸음씩 학원 계단을 오를 때마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매킨토시 LC의 경쾌한 시동음처럼 들리던 시절이었다.

내 방 책상에 컴퓨터가 놓인 것은 몇 년 뒤의 일이다. 매킨토시보다 육중한 컴팩 데스크톱에서 울려퍼지는 (게다가 브라이언 이노1가 작곡한) 윈도우 95의 시동음은 내가 그때껏 들어온 매킨토시와 조금 달랐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열한 살이던 1995년 무렵에는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야후! 지오시티’(Yahoo! Geocities)에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당시 나를 추동한 것은 오직 그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욕망뿐이었다. 그 욕망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콘텐츠와 디자인이 만들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웹사이트는 화면 가운데 자리 잡은, 당시 내 또래가 좋아할 법한 글과 그림 뒤로 적갈색 배경에 MIDI 음악이 흘렀다. 온라인 환경이 PC 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옮겨가면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닷컴 버블이 꺼지고, 웹 2.0을 앞세운 웹의 새로운 생태계가 자리 잡은 2009년 말, 야후!에서는 느닷없이 지오시티의 문을 닫았고, 내가 처음 만든 웹사이트는 이제 오직 내 꿈속에만 자리한다. 야후! 지오시티가 문을 닫으면서 복구할 수 없는 것은 내 욕망과 정성이 섞인 파일뿐이 아니었다. 누구나 자기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무대와 기회 또한 무너졌고, 그 자리는 소셜 미디어가 차지하고 말았다.
또래보다 조금 일찍 컴퓨터와 웹을 접한 덕에,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고 실현한 덕에 그 뒤로 반드시 웹사이트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HTML, CSS, 자바스크립트, 나아가 PHP, 파이썬 같은 컴퓨터 언어를 조금씩 익혀 뭔가 만드는 일이 오랜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한편, 2015년부터 내가 근근이 운영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특히 웹을 사랑하는 까닭은 웹이 (인터넷에만 연결돼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접근하기 쉬우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력과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인 까닭이다. 게다가 기술을 기반에 두므로 실제로 유용하거나 유용한 척할 수 있고, 재고품을 보관할 물리적 사설 창고 또한 필요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이 잠들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마주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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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는 자신을 ‘비(非)뮤지션’이라 불렀다. 악보도 못 읽고, 공연도 하지 않으며, 대신 사운드를 ‘연주’하지 않고 ‘기른다’고 믿었다. 록시 뮤직(Roxy Music)의 초기 멤버로 출발했지만, 진짜 이야기는 밴드를 떠난 뒤 시작됐다. 1975년 Discreet Music, 1978년 Ambient 1: Music for Airports를 통해 ‘앰비언트’라는 장르를 만들었고, 공항 대합실을 위한 음악이란 개념은 그 자체로 실험이자 선언이었다. 그는 우연성과 시스템을 활용한 작곡, ‘우회 전략’(Oblique Strategies)이라는 창작 카드, 사운드를 환경으로 만드는 방식 등을 통해 음악과 사고의 구조를 함께 뒤흔들었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U2, 콜드플레이(Coldplay)까지 그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은 셀 수 없고, 그 영향은 음악을 넘어 설치 미술, 인터페이스 디자인, 철학적 상상으로까지 확장된다. 요컨대, 이노는 음악을 만들면서 늘 음악 바깥을 상상한 가장 조용하고 가장 급진적인 프로듀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