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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질서, 디스코드 서버 개설해

그저 이름으로

「새로운 질서」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누군가는 이곳을 작은 학교 또는 신흥 종교라 말하곤 한다. 둘 다 맞거나 둘 다 틀리다. 이 모호함은 얼핏 블랙 마운틴 칼리지와 퀘이커를 떠올리게 한다. 블랙 마운틴 칼리지는 전통적인 교육의 경계를 허물고, 배움과 창작을 실험한 공동체였다. 퀘이커는 ‘친우회’라는 이명처럼 교주와 신도의 구분을 없애고, 모든 이가 평등하게 신성을 탐구하는 공동체를 지향했다. 「새로운 질서」는 이 둘 사이를 오간다.

193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문을 연 블랙 마운틴 칼리지는 학교라기보다 공동체에 가까웠다. 미국의 유명한 시각 예술가, 작곡가, 시인, 디자이너 등이 학생을 지도했고, 학생들은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학과를 편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교사와 학생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배우고 작업했다.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는 가르침과 배움의 역할을 고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이후 블랙 마운틴 칼리지의 교수와 학생 들은 미국의 전위 예술을 비롯해 여러 분야의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교사로는 건축가인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 화가인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로버트 머더웰(Robert Motherwell), 작가인 찰스 올슨(Charles Olson), 작곡가인 존 케이지(John Cage),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등이 있었다. 「새로운 질서」 또한 누군가를 특정한 역할로 규정하지 않는다. 선생과 학새의 경계는 자연스럽게 흐릿하다. 모두 질문을 던지고, 함께 대답을 찾아간다.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실험된 유동적인 관계는 「새로운 질서」를 지탱하는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한편, 1647년 영국에서 조지 폭스(George Fox)가 창시한 퀘이커는 전통적인 종교 구조를 부정했다. 그 안에는 교주도, 신자도 없다. 대신 모든 구성원이 내면의 빛을 통해 신성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평등한 구조는 침묵 속에서 각자가 진실한 발언을 할 때 실현된다. 「새로운 질서」도 이 구조를 닮았다. 누군가를 특별히 위에 두지 않고, 모든 이가 각자의 질문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존중한다.

「새로운 질서」에서 우리는 서로를 그저 이름으로 부른다. 블랙 마운틴 칼리지나 퀘이커에서 서로를 동료이자 친구로 대하듯 「새로운 질서」에서도 이름만 남는다. 이름은 직위나 지위를 암시하지 않는다. 단순히 관계의 시작을 알릴 뿐이다. 하지만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려는 시도를 넘어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행위다. 그 행위는 침묵 속 대화처럼 관계를 서서히 깊게 만든다.

「새로운 질서」는 블랙 마운틴 칼리지처럼 배움을 실험하고, 퀘이커처럼 관계를 재구성한다. 작은 학교나 신흥 종교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여기에 있다. 「새로운 질서」서 배움과 신념은 다르지만 같은 지점을 바라본다. 우리는 이름을 부르고, 침묵을 경청하며, 질문과 답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실험한다.

「새로운 질서」에서는 서로를 ‘선생님’, ‘님’, ‘씨’ 등 호칭 없이 그저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러니 저 또한 그저 ‘구홍’이라고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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